'옷소매 붉은 끝동'은 조선 제22대 왕 정조와 그를 두 번이나 거절한 궁녀 성덕임에 관한 이야기다. 원작 소설을 쓴 강미강 작가는 실제 역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설레는 이야기를 그리자는 목표로 사료를 참고하며 8년에 걸쳐 글을 완성했다.
그 후 정해리 작가가 각색해 MBC에서 이준호(이산), 이세영(성덕임) 주연의 17부작 드라마를 만들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 원작 소설과 드라마의 줄거리와 결말은 비슷하지만 등장인물, 대사 차이점이 생각보다 많아 비교하며 보는 재미가 있다.
옷소매 붉은 끝동 줄거리
'왕은 궁녀를 사랑했는데,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 줄거리는 이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정조가 의빈 성씨 덕임의 죽음을 애도하며 직접 쓴 '어제의빈묘지명'에 따르면 이산은 동궁 시절인 열다섯에 성덕임에게 반해 고백하지만 거절당한다.
15년이 흘러 정조가 왕이 되고 서른 살에 다시 승은을 명하지만 덕임은 또 거절한다. 이때는 왕도 순순히 포기하지 않고 덕임의 시종을 대신 벌해서 그녀의 승낙을 받는다. 그 후 덕임은 문효세자를 낳고 의빈이 되지만 정조와 오랜 시간 함께하지는 못한다.
사료에 따르면 정조는 분명 궁녀 덕임을 사랑했는데,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 강미강 작가는 두 번이나 왕을 거절한 덕임의 속마음을 상상해 보았다.
소설 첫 문장
"갑신년 가을. 올망졸망한 여자아이 여럿이 뙤약볕을 피해 대궐 처마 아래 둥그렇게 모였다. 붉은 댕기로 새앙머리를 올려 묶은 생각시 덕임이 책을 들고 낭랑히 목소리를 높였다."
옷소매 붉은 끝동 원작 소설 드라마 비교
1. 등장인물 비교
원작 소설에는 없는 인물이 드라마에 등장하기도 하고, 같은 인물이지만 다른 성격과 비중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소설이 글이라는 특성을 살려 주인공인 정조 이산과 궁녀 성덕임의 속마음에 집중한다면, 드라마는 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풀어낸다. 각색과 아름다운 연출 덕분에 드라마가 등장인물들을 담는 시선이 소설보다 따뜻하게 느껴진다.
- 이산
이산은 원작 소설과 드라마에서 도깨비, 호랑이에 비유될 정도로 무섭고, 까칠하다. 소설 속 이산은 특히 표현에 서툴다. 좋아하면 잘해줘야 할 텐데 관심을 끌고 싶어서 더 괴롭히는 어린아이처럼 군다. 덕임을 향한 애정은 호기심, 소유욕, 질투로 주로 표현된다. 그래서 일방적이고 배려가 없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사내로 보라 열심히 치댈 때는 언제고 막상 저 필요한 순간에는 아무렇지 않게 임금의 탈을 써버 린다. 그녀에게는 궁녀이면서도 계집일 것을 요구하면서, 그 자신은 오직 지엄한 지존일 것만을 고집한다. 이기적이다. 그리고 그 이기심을 당연하게 여긴다. 임금은 될 수 있을지언정 한 사람의 사내는 될 수 없다. (1권 p479)
"난 너를 힘들게 할 테고, 네 속을 상하게 만들 거다. 때문에 영영 네 마음은 얻지 못할지도 모르지. 접때 네 말이 맞다. 난 어쩔 수 없이 그런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될 순 없어. 되고 싶지도 않고." (2권 p245)
드라마 속 이산(이준호)도 소설의 캐릭터와 비슷하지만 애틋함이 있다. 덕분에 원작보다는 조금 더 다정하고 배려하는 이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소설의 이산은 주로 질투를 통해서 덕임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반면 드라마의 이산은 소유욕에서 오는 질투의 감정도 있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에서 서로를 여러 차례 구하면서 고마움, 미안함, 그리움을 느끼며 덕임이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임을 알아간다.
- 성덕임
성덕임은 소설과 드라마가 비슷하다. 책을 좋아하고 글씨를 잘 쓴다. 엄격한 규칙과 명령에 따라 생활해야 하는 궁녀지만, 그 안에서도 스스로 선택하며 인생을 꾸려나가려는 의지가 있다. 소설 곳곳에 표현된 주체적인 덕임의 속마음을 읽으면 정조의 승은을 왜 두 번이나 거절했는지 알 수 있다.
덕임은 소설을 좋아했다. 그러나 또한 읽으면 읽을수록 위화감도 느꼈다. 여인의 감정을 제대로 짚어내는 글일랑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소설에서는 늘 참고 감내하는 현숙한 여인 아니면 투기하고 패악을 부리는 첩만 등장할 뿐, 그 중간이란 없었다. (1권 p55, 56)
"승은을 입는 거 말이야. 죽을 때까지 임금님 총애에만 기대야 하잖아. 말이야 좋지만 결국엔 자기 인생을 남의 손에 쥐여 주는 빛깔 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는걸." (1권 p60)
"난 절대로 당하고만 살진 않을 거야."
달아날 곳은 없어도 저항은 할 수 있다. 적어도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선 스스로 뜻대로 살고 싶다.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 스스로 무엇을 이루고 싶다. (1권 p328)
- 산과 덕임의 사람들
덕임의 스승인 '서 상궁'은 소설에서는 덕임이와 그리 애틋한 정을 나누지는 않는다. 천방지축인 덕임이를 주로 꾸짖는 역할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궁녀가 된 덕임에게 엄마 같은 존재로 속마음을 들어주고 지켜주는 따뜻한 어른으로 그려진다.
덕임의 소중한 동무들인 영희, 경희, 복연이는 원작과 성격은 비슷하지만 드라마에서 비중은 조금 줄어든다. 원작에서는 특히 경희가 이산과 덕임 사이를 눈치채고 조언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역할을 한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궁녀 친구들은 왕과 관련된 이야기에는 거의 참여하지 않고 덕임이와 우정을 나누는데 집중한다.
소설에서 이산은 도깨비보다 무섭다는 까칠한 인물로 주변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없다. 그래서 더 외롭고 독불장군같이 느껴진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한 친구이자 신하인 홍덕로가 가장 가까운 측근이지만 권력에 취해 언제든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알고 있다. 다행히 드라마에서는 덕임이의 스승 상궁이자 이산을 모시는 서 상궁, 동궁 내관, 충직한 호의무사 좌익위 태호가 산의 옆을 든든하게 지킨다.
- 원작에 없는 드라마 속 인물들
소설에서 영조는 사랑했던 여인 의열궁의 빈소에서 어린 생각시 덕임과 만나는 장면에만 나올 뿐 그 이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12회까지 영조(이덕화)가 출연하면서 세손 시절의 이산과 긴장관계를 만들고, 덕임의 목숨이 오가는 사건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조는 손자를 사랑하면서도 끊임없이 의심하며 혼란을 주지만, 동시에 이산을 지켜주는 태산 같은 존재로 표현된다.
소설에서는 제조상궁 조 씨나 화완옹주가 등장하지 않는데 드라마에서는 이산의 반대 세력으로 갈등을 만들며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과거 죄 없는 궁녀들을 죽인 사도세자의 아들 이산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제조상궁 조 씨가 비밀조직 광안궁을 운영하며 역모를 꾀하는 에피소드는 드라마에만 등장한다. 원작에 없는 제조상궁 조 씨를 비중 있게 다룬 것은 덕임의 직업인 궁녀의 삶이 가진 애환에 대해 더 깊이 다루기 위함인 듯하다.
2. 대사 비교
드라마와 원작 소설을 비교하며 발견할 수 있는 재미있는 점은 '대사'다. 같은 대사인데 다른 상황, 다른 인물의 입을 통해 나오는 장면들이 흥미롭다. 드라마로 각색하면서 추가된 에피소드에 소설의 명대사들이 마치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던 것처럼 잘 어우러진다.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하니 대사의 여운도 더 짙고 길어진다.
"제대로 갖지 못한다면 차라리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나을 테니까."
이 대사는 드라마에서는 덕임이 이산을 좋아하면서도 후궁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이유를 서 상궁에게 말하면서 등장한다. 후궁이 되면 자신은 왕의 것이 되겠지만, 왕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작 소설에서는 친구 경희가 덕임에게 하는 말이다.
"내가 너에게 휘둘리고 있나? 아니면 네가 나한테 휘둘리고 있는 건가?"
드라마에서는 "네가 나에게 휘둘렸느냐 아니면 내가 너에게 휘둘렸느냐?"라는 대사로 5회에서 이산이 덕임에게 책 선물을 한 후 거리에서 속마음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쓰였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책방 데이트(?) 장면이 없고 이산의 목욕 장면에서 이 대사가 등장한다.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 더 이상 부정할 수 없는 확신이 그녀를 덮쳤다... 그리고 이 사람은 천하의 지존이시다.
소설에서는 평소처럼 대화중에 덕임이 이산의 마음을 눈치채는 장면에서 이 대사가 쓰인다. 드라마에서는 별당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감귤로 이산이 마음을 고백하고 덕임이 거절하는 장면에서 등장해 더 애틋하게 들린다.
3. 옷소매 붉은 끝동 결말 비교
소설과 드라마의 결말은 같다. 정조 이산과 의빈 성씨 덕임의 이야기는 역사이니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던 셈이다. 역사가 스포니까. 물론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정해진 결말을 전혀 다르게 바꿀 수도 있다.
하지만 지나가는 이야기, 인물들까지도 최대한 사료에 충실하게 쓰겠다는 원칙을 세운 원작 소설 강미강 작가는 역사와 같은 결말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결말이 정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설과 드라마의 엔딩은 새롭고 놀랍다. 원작 소설의 아름다운 상상력과 드라마의 따뜻하고 신비로운 연출이 오래도록 마음을 붙잡는다.
임금은 될 수 있지만 사내는 될 수 없었던 남자와 사랑하는 이에게 전부를 주면 전부를 받을 수 있는 평범한 사랑을 하고 싶었던 여자가 다시 만났다. 그들이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서. 그리고 순간은 곧 영원이 되었다.
옷소매 붉은 끝동 후기
기존의 다른 사극과 달랐던 매력은 '궁녀의 삶'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이다.
"내가 전하를 어찌 생각하는지는 안 물어봐?"
"그딴 걸 누가 신경 써." (1권 p253)
그동안 사극에서는 궁녀의 마음은 궁금해하지 않았다. 임금의 승은을 입는 것은 상이자 가문의 영광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임금의 눈에 들어 승은을 입으려는 궁녀들의 경쟁이나, 임금의 사랑을 두고 후궁들이 시기 질투하는 연출이 익숙했다.
그런데 궁 안 수백의 궁녀들이 모두 하나의 마음이었을까? 모시는 주인으로 임금을 존경하지만 사내로서는 연모하지 않았을 수 있다. 여관으로 일을 하고 월급을 받으면서 직업인으로서 궁녀의 삶에 자부심을 가진 이들도 있을 것이다.
덕임이 그런 주체적인 삶을 살려는 궁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드라마에서는 궁중에서 일하는 여성 관리로서 궁녀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드라마 초반에 덕임이 이산에게 무사히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맹세한다. 이 장면은 여인이 아닌 신하로서 덕임의 다짐을 보여준다.
"약속하렴. 남이 아닌 너 자신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드라마 설정과는 달리 소설에서는 덕임의 어머니가 동생을 낳다가 죽는다. 그리고 죽기 직전에 덕임에게 남을 위한 삶이 아닌 너의 삶을 살라는 말을 남긴다. 그래서 평생 왕을 위해 살아야 하는 궁녀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 그러나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그리고 궁에서 쓰는 아름다운 글씨에 반해 덕임은 궁녀가 된다.
궁녀가 되었지만 자기 의지로 선택을 하고 스스로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이산의 승은을 계속 거절한다. 실제 성덕임의 마음은 알 수 없으나 드라마와 소설 속 덕임은 이산에게 호감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여인이 되기를 강력하게 거부한다. 덕임은 후궁이 되면 자신을 잃을까 두려웠다.
드라마에서 결국 정조의 마음을 받아들여 승은을 입고 후궁이 되어 별당에서 지내는 덕임의 모습을 보면 덕임이 두려워했던 것이 무엇인지 소름 끼치게 실감할 수 있다. 궁녀 시절 호기심과 총명함으로 빛나던 눈은 빛을 잃었고, 힘은 들어도 맡은 일을 해내며 보람찼던 하루는 언제 올지 모를 왕을 기다리는 일로 채워진다.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일들이 사라져 버렸다.
휴일을 맞아 예쁜 옷을 차려입고 궁궐 밖으로 나가는 친구들을 배웅하며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궁녀 시절의 자신에게도 작별 인사를 하는 드라마 장면은 덕임의 마음과 현실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뭉클한 연출이었다.
'왕은 궁녀를 사랑했는데, 궁녀는 왕을 사랑했을까?' 이 질문의 답은 무엇일까. 감히 짐작해 보건대 덕임도 이산을 사랑했지 않았을까. 물론 우리는 끝내 정답을 알 수 없다. 궁녀의 진심은 성덕임만이 알고 있으니까. 하지만 옷소매 붉은 끝동 원작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그동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았던 궁녀의 마음을 생각해봤다는 점에 큰 의미가 있다.
- 원작 소설 작가 : 강미강
- 드라마 작가 : 정해리
- 드라마 연출 : 정지인, 송연화
- 편성 : MBC 2021.11.12. ~ 2022.01.01. 17부
- 출연 : 이준호(이산), 이세영(성덕임), 강훈(홍덕로), 이덕화(영조), 박지영(제조상궁 조 씨), 장희진(중전 김 씨), 장혜진(서상궁), 오대환(좌익위 강태호), 이민지(김복연), 하율리(배경희), 이은샘(손영희), 서효림(화완옹주), 강말금(혜빈 홍씨), 윤효식(동궁 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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