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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 | 트라우마를 예술로 승화시키다

by 해봄. 2021. 6. 16.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는 92세에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현대 미술의 거장 쿠사마 야요이의 일생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쿠사마 야요이가 직접 출연해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준다. 

 

  노란 호박에 검은색 점이 반복적으로 박힌 '호박', 공간과 시간의 경계가 허물어진 신비한 경험을 선물하는 '무한 거울의 방' 등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에는 물방울무늬, 점이 빠지지 않는다. 환 공포증을 일으킬 것만 같은 점의 반복은 쿠사마 야요이가 평생 앓아온 강박, 환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다

 

  쿠사마 야요이는 어린시절 부모에게 보호 대신 상처를 받으며 자랐다. 아버지는 늘 외도를 했고, 어머니는 어린 쿠사마 야요이에게 그런 아버지를 감시하게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야요이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갑자기 나타나 그림을 찢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쿠사마 야요이는 상처에 갇히지 않고 상처를 세상에 꺼내 예술로 승화시켰다. 부모님에게 받은 정서적 학대의 아픔을 작품으로 표현했고, 어머니에게 작품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그림을 빨리 그리기 시작했다.

 

  그 덕분인지 쿠사마 야요이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를 습작 없이 순식간에 완벽한 작품으로 완성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술에 대한 그녀의 열정은 걸림돌을 디딤돌로 만들었다.  

 

차별과 우울


  적극적으로 상처와 장애물을 돌파하는 쿠사마 야요이였지만, 1960년대 미국에서 여성, 동양인이라는 차별과 편견을 무너뜨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뛰어난 예술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전시 기회를 잡기 힘들었고, 아이디어를 빼앗기기 일쑤였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같은 시기 활동했던 앤디워홀에게 아이디어를 빼앗겼던 일화도 공개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전시에 와서 칭찬을 했던 앤디 워홀은 몇 주 뒤 자신의 전시에 야요이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따라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리고 평단의 찬사와 스포트라이트는 앤디 워홀에게 돌아갔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쿠사마 야요이는 깊은 우울에 빠졌고, 여러 차례 세상을 떠나려 했다. 일본으로 돌아간 쿠사마 야요이는 스스로 미술치료를 하는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며, 병원 근처에 작업실을 마련해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고 싶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는 니체의 말처럼, 죽고 싶은 고통을 지나온 쿠사마 야요이는 더 단단한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편견과 차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작품 활동 덕분에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보유한 작가로 불리며 전 세계의 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

 

  젊은 시절 고통스러운 삶을 끝내고 싶어 했던 쿠사마 야요이는 92세의 나이가 되어 말한다.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고 싶다고. 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인생은 알 수 없다. 죽음 말하던 이가 무한의 삶을 꿈꾸게 되기도 하니 말이다.

 

전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예술의 힘으로 세상이 평화로워지길 바라요.
- 쿠사마 야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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