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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파리 한 조각 |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편지3)

by 해봄. 2021. 4. 5.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일 년 넘게 장작을 해오고, 진흙을 퍼오며 일손을 돕던 너는 언제쯤 도자기 만드는 걸 가르쳐 주실지 민 영감님께 물었다가 청천벽력 같은 대답을 들었지. 도공이라는 직업은 아버지한테서 아들로 대물림되기 때문에 민 영감의 아들이 아닌 너는 도자기 만드는 법을 배울 수가 없다고.

 

  멋진 그릇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좌절된 너만이 아니라 대답을 하는 민 영감님에게서도 슬픔과 분노를 느낄 수 있었어. 사실 민 영감님에게는 네 또래의 형규라는 아들이 있었는데 열병으로 잃었던 거야. 너에게 까칠하게 대했던 민 영감, 유독 다정하게 밥과 옷을 챙겨주던 아줌마의 행동이 모두 이해되는 순간이었어. 너를 보면 죽은 아들 형규가 생각나서 민 영감은 슬퍼서 화가 났고, 아줌마는 애달팠던 거야.

 

  하지만 네 말처럼 민 영감 부부가 아들을 잃은 것도, 네가 고아인 것도 네 잘못이 아니야. 도자기를 잘 만들기만 하면 되지, 도공의 아들만이 도공이 될 수 있다는 법은 부당해.

 

  속상해하는 너에게 두루미 아저씨는 그런 법이 생긴 배경을 이야기해주셨지. 옛날에는 생필품을 만드는 도공을 천한 직업으로 여겨서 자식들이 물려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그래서 점점 도공이 부족해지자 왕이 포고령을 내려 도공의 아들은 반드시 도공이 되어야 한다고 선언을 했지. 시간이 흘러 법은 없어졌지만 잘 보전된 전통은 관습이 되어 법보다 강력하게 생활 속에 자리 잡게 되었어.

 

  놀라운 것은 천년이 지난 미래에도 이런 부당한 일이 계속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야. 어쩌면 더 많아 졌을지도 몰라. 네가 사는 시대에는 신분에 따른 차별이 있었다면, 요즘은 피부색, 국적, 성별, 나이, 경제력 등등 그 기준도 훨씬 다양해졌어.

 

  네가 걸어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며칠이 걸렸던 거리를 요즘은 몇 시간이면 갈 수 있고, 하늘을 나는 비행기라는 운송수단 덕분에 네가 알지 못하는 먼 대륙들로도 사람들이 갈 수 있게 되었어. 그만큼 다양한 사람과 문화를 접할 수 있게 되었지. 하지만 다양성의 이면에는 차이가 차별이 되고, 다름이 틀림이 되는 안타까운 문제도 생겨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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