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목이에게 보내는 편지. 사금파리 한 조각을 읽고.
목이야! 오늘도 밥 잘 먹었니?
쓰레기 더미에서 먹을거리를 찾던 배고픈 시절에 두루미 아저씨는 "어이, 목이야! 오늘도 잘 굶었나?"라고 장난스레 인사를 하셨지. 지금은 민 영감님 집에서 배불리 먹고 있을 테니 나는 다르게 안부 인사를 건네 보았어. 잘 지내고 있지? 사실 너를 '목이'라고 불러야 할지, '형필'이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했었어.
생각해보니 너에게는 이름이 세 개가 있더구나. 열병으로 돌아가신 부모님이 불러주셨을 첫 번째 이름. 고아가 된 너를 맡아줄 줄포에 사는 삼촌마저 연락이 닿지 않았을 때, 너를 돌봐준 두루미 아저씨가 부르던 이름 '목이'. 도공 민영감과 부인이 지어준 이름 '형필'. 이름이란 참 신기하지? 너는 너인데 어떤 이름으로 불리냐에 따라 다른 사람처럼 보이니 말이야. 정체성이 이름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이름이 정체성을 제한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
'목이'는 죽은 나무나 쓰러진 나무의 썩은 낙엽 속에서 저절로 자라는, '귀처럼 생긴 목이버섯'에서 따온 이름인데, 두루미 아저씨는 고아한테 썩 잘 어울리는 이름이라고 하셨지. 그런데 부모 없이 혼자 자라는 고아라는 뜻에 가두기에는 목이라는 이름이 가진 더 많은 의미가 너와 닮았어.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을 피워내는 씩씩함, 환경을 탓하고 포기하기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을 찾아내는 의지야말로 너와 '목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이유라고 나는 느꼈어. 그러니 이 편지에서 너를 '목이'라고 불러도 될까?
두루미 아저씨의 별명도 아저씨와 참 잘 어울려. 태어날 때부터 한 쪽 다리가 오그라들고 뒤틀려서 다리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걸 보고 사람들이 한쪽 다리를 들고 자는 두루미 같다고 하여 붙여진 별명이지만, 다른 의미에서 아저씨와 두루미는 닮았어.
목이 네가 사는 고려시대에서 천년쯤은 더 시간이 흐른 뒤 내가 사는 세상에서 두루미는 천연기념물이야.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이라 보호가 필요하다는 뜻이지. 돌쟁이 갓난아이 때부터 십 년 넘게 너를 맡아 훌륭하게 키워온 착한 심성과 지혜를 가진 두루미 아저씨는 그때도 지금도 보기 드문 귀한 사람이야. 따뜻한 세상을 위해서 천연기념물 두루미처럼 지켜져야 할 분인 거지. 네 곁에 두루미 아저씨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다행이고, 한편으로는 부러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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