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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금파리 한 조각 | 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목이에게 보내는 편지 2

by 해봄. 2021. 4. 3.

'두루미 아저씨하고 눈이 비슷해'

  도자기를 만드는 민 영감의 집에서 민 영감의 부인을 보았을 때 너는 부인의 눈이 두루미 아저씨의 눈과 비슷하다고 느꼈었지. 나는 두 사람의 눈을 본 적이 없지만 어떤 눈인지 알 것 같았어. 세상의 기쁨과 슬픔을 수차례 겪으며 얻은 지혜를 담고 있는, 담담하지만 따뜻한 눈이 아니었을까. 두루미 아저씨와 아줌마는 다른 이의 아픔을 알아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아픔을 잘 알아주는 사람은 어쩌면 가장 많이 아파본 사람일지도 몰라.  

 

  가족은 함께 공유한 시간과 감정이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다는 것을 너와 두루미 아저씨를 보며 실감했어. 너의 작은 뒤척임에서도 고민을 읽고, 지혜를 나누는 두루미 아저씨는 정말 좋은 부모라는 생각이 들었어. 가족을 모두 잃었던 아저씨는 혼자 자라면서 간절했던 가족의 울타리, 따뜻한 말 한마디를 자신처럼 가족을 잃은 너에게 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아픔을 세상에 분노로 표출하지 않고,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목이 너의 아픔을 알아주고 보듬어준 두루미 아저씨는 진정한 어른이었어.

 

  민 영감의 작업실에서 도자기를 몰래 구경하다가 작품을 망가뜨린 너는 민 영감을 돕는 걸로 보상을 하기로 했지. 예민한 민 영감과는 달리 부인은 너에게 가까운 사이에서만 정겹게 부를 수 있는 아줌마라는 호칭으로 부르라고 하시며 늘 평온하게 맞아주셨지. 점심때마다 아줌마는 바가지에 밥과 반찬을 챙겨주셨는데 기특하게도 너는 반은 먹고 반은 남겨서, 일이 끝나면 다리 밑으로 돌아가 두루미 아저씨와 저녁밥으로 먹었지.

 

  그걸 눈치 채고 아줌마는 네가 반만 먹고 숨겨 놓은 바가지를 아무 말 없이 가득 채워두셨고, 덕분에 너와 두루미 아저씨는 든든한 저녁을 먹을 수 있었지. 네가 민 영감의 도자기를 왕실에 보여주기 위해 송도로 떠날 때도, 두루미 아저씨의 끼니를 걱정할 것을 알고 아저씨에게 일손을 도와달라고 하며 끼니를 챙겨주려 한 아줌마의 세심한 배려에 나는 또 한 번 감동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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