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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책방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中 배우 박정민 | "너 쓰지 마. 아주 쓰기만 했다 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by 해봄. 2022. 8. 1.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는 작가 아홉 명이 '글 쓰는 마음'에 대해 쓴 글을 모아 엮은 책이다. 모순된 책 제목이 말이 안 되는 데, 무슨 마음인지 너무 알겠다. 자이언티 노래 '꺼내 먹어요' 가사 중 '집에 있어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처럼 말이다.

 

  일로든 취미로든 쓰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버린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까. 쓰고 싶은 데, 쓰기 싫은 이상한 마음. 읽고 싶은 데, 읽기 싫은 독자의 마음도 비슷하다. 세상에는 글보다 쉽고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반면 글은 쓰는 것도 읽는 것도 시작하는 의지와 지속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배우 박정민 '쓰고 싶지 않은 서른두 가지 이유'

 

  배우이자 책 <쓸 만한 인간>의 작가 박정민은 '쓰고 싶지 않은 서른두 가지 이유'라는 글로 책의 한 부분을 채웠다.

 

쓰고 싶지 않은 이유가 서른두 가지나 되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쓰고 있다니. 역시 난 위선자다. (p139)

 

막상 쓰기 시작하면 쓰기를 제외한 세상 그 모든 것들이 흥미롭다. (p129)

 

  쓰고 싶지 않은 이유가 서른두 가지나 되려나 싶었는데 공감 버튼이 있었다면 모두 눌렀을 거다. 쓰고 싶은 데 쓰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는 사실 '잘'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잘 쓰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쓰고 싶지 않다.

 

  잘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읽는 이가 밑줄 긋고 고이 옮겨 적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훌륭한 문장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능력 밖의 영역으로 욕심내지 않는다.

 

  다만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정확하게 글로 옮기고 싶을 뿐이다. 그런데 간단해 보이는 그 작업이 막상 글을 쓰려고 하면 이상하게도 쉽지 않다. 머릿속에 있는 걸 그대로 문자로 옮긴다고 글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정리하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

 

  쓰기 싫고 쓰는 것이 힘들면 안 쓰면 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쓰기 싫다는 생각조차 글로 쓰는 이유는 뭘까? 박정민 배우는 봉인의 과정이라 말한다.  

 

그렇게나 쓰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메모장에는 쓰는 것이 모순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건 봉인의 한 과정이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것들을 무쇠 안에 구겨 넣음으로써 내일은 좀 더 산뜻해질 것이다. 
산뜻해지기 위해서는 쓸 수밖에 없다. 모순이지만 어쩔 수 없다. (p129) 

 

  산뜻해지기 위해서는 쓸 수밖에 없다는 문장이 반가웠다. 살아가면서 많은 생각과 감정이 쌓인다. 그것들을 마음과 머릿속에 계속 담아두면 무거워진다.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여유가 없어서 답답해진다.

 

  풀어내고 가벼워지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처음부터 쌓지 않고 흘려보내는 사람도 있을 테고, 수다를 떨거나, 술을 마시거나, 운동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기타 등등. 어쩌다 글쓰기가 그 방법이 된 사람은 그래서 쓰고 싶고 쓸 수밖에 없다. 쓰는 게 힘들어도 쓰지 않으면 더 힘드니까.

 

"너 쓰지 마. 쓰기만 해. 아주 쓰기만 했다 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책 '쓰고 싶다 쓰고 싶지 않다'에서 쓰고 싶지 않은 서른두 가지 이유를 마무리하면서 박정민 배우는 어머니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공부하라고 했더니 짜증 내는 아들에게 그럴 거면 공부하지 말라고, 하면 너 죽고 나죽는 다고 혼내자 청개구리처럼 공부에 박차를 가해 우등상을 타 왔다는 이야기.

 

  그러니 혹시라도 가끔씩 박정민의 글이 조금이라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아주 긴밀하고 진정성 있게 이렇게 속삭여 달라고 말했다. "너 쓰지 마. 쓰기만 해. 아주 쓰기만 했다 봐. 너 죽고 나 죽는 거야."  

 

 

[박정민 배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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