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곳 오프닝
김종관 감독의 영화 '아무도 없는 곳'의 주인공 소설가 창석(연우진)은 7년 만에 영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미영(아이유 이지은), 유진(윤혜리), 성하(김상호), 주은(이주영)을 차례대로 만난다. 영화는 그들의 만남과 헤어짐을 보여 준다.
조용한 카페에서 졸고 있던 미영(아이유)이 깨어나 맞은편에서 소설책을 읽고 있는 창석(연우진)과 이야기를 하며 영화는 시작된다. 두 주인공이 대화를 나누는 오프닝 장면을 보면서 직감했다. 큰일 났다! 정신을 제대로 차려야 한다.
잘못하면 얼마 가지 않아 꿈속으로 떨어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느릿한 말투, 잔잔한 대화, 말과 말 사이의 긴 공백은 탁구처럼 빠르게 말을 주고받는 티키타카 대화에 익숙한 관객에게는 마치 잠을 부르는 ASMR처럼 들렸다.
그런데 관객석에서 구경하는 '보는' 사람에서 인물들과 같은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듣는' 사람으로 자리를 바꾸니, 신기하게도 느리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더 이상 답답하지 않았다. 마음속 이야기를 꺼내려고 조심스럽게 입을 떼는 친구를 재촉하지 않고 기다리는 마음이 되었달까.
상실에 관한 이야기
창석(연우진)이 만난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그리 친하지도 않은 창석에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툭툭 꺼내 놓는다. 창석이 잘 듣는 사람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걸까. 그들의 이야기에는 상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상실을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시종일관 담담하다. 그래서 이상하고, 슬프고, 다행이다.
미영(아이유 이지은), 유진(윤혜리), 성하(김상호), 주은(이주영)의 이야기는 창석이 덮어두었던 상실의 기억과 감정을 건드린다. 내내 듣고 있던 창석의 마음에 조금씩 일렁임이 생기고 영화 후반부에는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마주한다.
아무도 없는 곳에 이야기가 있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자주 텅 빈 종로의 골목과 일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 시선을 보낸다. 카메라에 담긴 풍경과 사람들이 하나하나의 이야기로 보였다.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골목, 쓰레기가 쌓인 공중전화 부스, 하루를 보내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하는 사람들, 손을 잡고 걸어가는 노부부 등등
영화 초반 창석이 유진을 만나 걷는 공원에서 혼잣말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 엔딩에 그 사람이 다시 한 번 등장하는데 이 장면의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아무도 없는 곳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영화는 저렇게 뭉클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다.
영화 아무도 없는 곳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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